연방타임즈 = 배지연 기자 | 정윤영작가의 '오빠생각'은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다달을 즈음, 더욱 악날해진 일본을 피해 이른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순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문] “이순아, 늦었다. 빨리 서둘러라.” 벌써 사립문을 나서는 아버지가 이순이를 보챘다. 이순이도 부리나케 고무신을 신고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자기도 데려가 달라며 심술이 난 동생과 엄마 등에 업혀 신나게 손을 흔드는 막내가 이순이를 배웅했다. 반나절 넘게 걷고 걸어 도착한 곳은 장터가 아닌 송목골이라는 곳이었다. 산으로 올라가지만 않았지 이순이가 살던 산골 집과 비슷했다. 경순 언니 또래로 보이는 남자와 그의 엄마인 듯 한 사람이 이순이와 아버지를 맞이했다. “인자부터 니 서방인겨.” 아버지가 이순이와 남자 사이에 물 한 사발이 올라간 소반을 올려 놓으며 말했다. 시집이라니, 말도 안 되었다. 정작 이순이만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집으로 갈 거여. 장 구경하고 싶댔지 시집 오고 싶댔어? 아부지, 지도 데려가요. 응?” “집보단 여그가 나을껴. 여그선 끼니는 거르지 않는다니께. 인자부터 니 서방이 나 대신인겨. 알아듣겄냐?” “엄니는 내가 올
연방타임즈 = 배지연 기자 | 이종석 작가의 '청산리로의 소풍' 은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 본 타임머신을 일제 강점기 우리 독립군의 최고 승리인 청산리 전투에 잘 접목한 동화이다. 통상적인 역사 관련 이야기들과 달리 과거와 현재를 인물들이 직접 자유로이 이동한다는 점이 굉장히 창의적이고 이색적이다. [본문] 우리는 주위를 살피며 기념관 안으로 들어갔다. 기념관 안은 조용했다. 그런데 기념관 가운데에는 김좌진 장군 동상이 은은하게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분위기가 으스스했다. 예전에 아빠와 왔을 때랑 너무 달랐다. 나는 현준이와 서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둘 다 직진밖에 모르는 성격이었다. 그 때, 갑자기 정문이 열렸고 우리는 김좌진 장군 동상 뒤에 숨었다. 아빠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던 아빠가 김좌진 장군 동상의 가슴에다 푸른 열쇠를 꽂고는 이상한 표식 같은 것을 새기고 있었다. “거기 누구야?” 들킨 듯했다. 서현이와 현준이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려 했고, 나는 고개를 들고 아빠를 불렀다. “아빠!” 아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준아! 분명히 돌아가라고 했는데 어떻게 들어왔어?”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 순간,
연방타임즈 = 배지연 기자 | 오빠생각 중 '미역국' : 엄마를 찾아 간 삼남매 앞에는 너른 들이 펼쳐졌다. 이 글의 배경인 전북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지역이다. 이렇게 넓은 평야를 가지고 있으니, 일제 강점기에 쌀 수탈을 피할 수 없었으리라. 막내가 보채서 나선 길이긴 했지만, 만삭인 엄마가 허리를 구부리고 일하는 것을 본 우애와 우남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칠성 아재가 들고 있던 말총 채찍이 아이들의 눈에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까? [본문] “니 어매 애 낳았냐?” 사립문에 걸린 금줄을 거칠게 밀치고 불쑥 들어온 건 칠성 아재였다. 그러자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우남이가 따져 물었다. “저기 금줄 안 보이요? 아무나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요. 아재는 것도 몰르요?” “하따, 느그 어매가 애 한두 번 낳냐? 금줄은 무슨 놈의 금줄. 이거 다 미신인 겨. 시대가 어느 시댄디 이런 걸 다 쳐 놓고는….” 그러더니 칠성 아재가 무언가를 쑤욱 우애 쪽으로 내밀었다. “받어라. 이건 하시모토 나리가 특별히 하사하시는 거다. 일등품으로다가 가져온 귀한 거여. 니 어매 끓여 드려라.” “아니, 이걸 왜….” “왜긴 왜것냐. 빨리 회복허라는 거
연방타임즈 = 배지연 기자 | 미역국을 집필한 송현주 작가는 편지쓰기를 좋아하는 소녀감성의 작가이다.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역사에 관심이 있어 역사동화를 집필하였다. 송작가의 미역국은 어떠한 색깔로 읽혀질 지, 첫 문장에서처럼 징게 멩게 너른 들녘으로 같이 가보자. [본문] 하늘과 땅이 맞닿은 서쪽, 징게 맹게* 너른 들녘 땅끝으로 붉은 노을이 드리워졌다. “엉엉, 엄마한테 갈 거야. 엄마한테 데려다줘엉.” 막내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마당에 주저앉아 떼를 썼다. 우애는 어쩔 수 없이 막내를 달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우남이도 따라나섰다. 아침을 먹고 일하러 간 아버지와 엄마가 아직 돌아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샅*을 내려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를 지나자 하시모토 집이 보였다. 하얀 벽돌을 쌓아올린 벽과 붉은색 지붕을 인, 크고 웅장한 집이었다. 가끔 창문 너머로 연초*를 물고 있는 관리인이 보이곤 했다. 이 큰 집을 지날 때마다 우애 가슴은 쿵쾅거렸다. 순사라도 튀어나와 와락 덮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분을 떨쳐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우애는 막내 손을 꼭 잡고 재빠르게 그곳을 지나쳤다. 그때 우남이가 갑자기 침을 ‘퉤’ 하고 뱉더니 냅다
연방타임즈 = 배지연 기자 | 오빠생각 중 '한복입은 소녀들' [본문] 옥이가 고무줄 양쪽 끝을 사립문과 감나무에 묶으며 말했다. 옥이가 하는 대로 노랫소리에 맞춰 따라 했지만, 처음 하는 놀이 라서 그런지 박자를 놓치며 고무줄에 발이 엉켰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옥이는 누가 간지럽히는 것도 아닌데 까르르 웃었다. 나도 자꾸 웃음보가 터져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헉헉, 아, 숨차. 이거 너무 재미있어!” 한복은 고무줄놀이할 때도, 바닥에 앉아 있기에도 너무나 편했다. 노는데 열중하다 보니 까맣게 잊었던 요깡이 생각났다.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요깡은 다행히 물에 젖지 않았다. “옥아, 이거 먹어 봤어? 요깡이야. 근데 어쩌지. 주머니에서 찐득하게 서로 붙어 버렸네.” “요깡?” 옥이는 요깡을 요리조리 돌려보며 냄새를 맡아 보더니 조금 떼어내 입에 넣었다. 입을 오물거리던 옥이의 눈이 알사탕처럼 커졌다. “와! 정말 맛있다!” 내가 고무줄놀이하며 즐거워했던 것만큼이나 옥이는 요깡 먹는 걸 좋아했다. “마사코, 넌 언니나 동생 없니?” “오빠가 있어. 있으면 뭘 해. 상대도 안 해 주는걸. 넌?” “여동생이 있어.” “어딨는데?” 옥이는 여동생 순이가 아파
연방타임즈 = 배지연 기자 | '오빠생각' 동화 중 하얀손수건의 마지막 편이다. 봉구와 봉구 아버지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본문]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폭칙폭, 칙폭칙폭…. 꾀애애애애앵…. 기차가 또 도착한다는 신호예요. 오늘은 사람들 속에 아버지가 정말 있을 것만 같았어요. 하얀 손수건이 돌아왔기 때문이에요. 봉구는 손수건을 꺼내어 높이 흔들었어요. 순간 휘리릭 바람이 불더니 봉구 손에서 손수건을 채 갔어요. 봉구 손을 떠난 손수건이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날아올랐어요.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플랫폼 쪽으로 더 날아가 버렸어요. 점점 더 멀어지는 손수건 너머로 지팡이를 짚은 키 큰 사내가 봉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멀리서 기차 소리가 들려 왔다. 봉구는 오늘도 교회당을 지나 역으로 간 것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폈지만 아빠같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하얀 양복에 하얀 구두를 신은 정자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이다. 아빠를 기다리던 정자가 눈물을 훔치자 손수건을 내어준 봉구. 이 날도 끝내 봉구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봉구에게 의미가 있는 그 손수건을 돌려주지 않고 정자가
연방타임즈 = 배지연 기자 | 오빠생각 중 '하얀손수건' [본문] “부산 와서 들은 소식인디유. 일본 기업에서 조선인을 위해 귀국선을 마련해 줄 거라는 소식을 들었슈. 배 이름이 우키시마호 라고 했는디…. 암튼 곧 부산항으로 들어올 거라고 했슈.” “우키…, 뭐유?” 교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다시 웅성거렸어요. 일본 놈들을 어떻게 믿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고맙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봉구는 아빠만 돌아온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어요. “봉구 아버지도 배 타고 곧 돌아오시겄구만유.” “봉구 엄니! 힘 내유. 곧 오신다잖어유.” 사람들은 엄마를 위로하는 말을 하고는 교회당을 하나둘씩 빠져나갔어요. “봉구야. 이거 받어라. 니 아부지가 헤어질 때 준 겨. 먼저 고향에 가거들랑 니한티 주라고….” 하얀 손수건이었어요. 노란 민들레와 나비 사이로 핏자국 같은 얼룩도 보였어요. “봉구 아부지, 봉구 아부지….” 엄마가 해진 손수건을 잡아챘어요. 그러고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어요. 봉구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어요. 하얀 손수건은 아버지가 일본으로 떠나던 날 엄마가 만들어서 건넨 거랬어요. 시집 오기 전부터 수놓는 거라면 동네 일등이었던 엄마가 하얀 치마 를 찢어 만들었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