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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작가의 동화이야기 10

배지연작가의 역사동화 '오빠생각' - 오빠생각 편

연방타임즈 = 배지연 기자 |


정윤영작가의 '오빠생각'은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다달을 즈음, 더욱 악날해진 일본을 피해 이른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순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문]

 

“이순아, 늦었다. 빨리 서둘러라.”

벌써 사립문을 나서는 아버지가 이순이를 보챘다. 이순이도 부리나케 고무신을 신고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자기도 데려가 달라며 심술이 난 동생과 엄마 등에 업혀 신나게 손을 흔드는 막내가 이순이를 배웅했다.

반나절 넘게 걷고 걸어 도착한 곳은 장터가 아닌 송목골이라는 곳이었다. 산으로 올라가지만 않았지 이순이가 살던 산골 집과 비슷했다. 경순 언니 또래로 보이는 남자와 그의 엄마인 듯 한 사람이 이순이와 아버지를 맞이했다.

“인자부터 니 서방인겨.”

아버지가 이순이와 남자 사이에 물 한 사발이 올라간 소반을 올려 놓으며 말했다. 시집이라니, 말도 안 되었다. 정작 이순이만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집으로 갈 거여. 장 구경하고 싶댔지 시집 오고 싶댔어? 아부지, 지도 데려가요. 응?”

“집보단 여그가 나을껴. 여그선 끼니는 거르지 않는다니께. 인자부터 니 서방이 나 대신인겨. 알아듣겄냐?”

“엄니는 내가 올 줄 알 틴디요. 동생들도 기다리고 있구만요. 아부지.”

“다른 뾰족한 수가 없응께. 니를 경순이처럼 순사에게 뺏기기는 싫어야. 엄니랑 그렇게 결정한 일이여. 느그 엄니 생각해서 잘 살아야 혀.”

아버지는 이순이 손을 매정하게 뿌리치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이순이가 떠나올 때 엄마 눈이 왜 퉁퉁 부었는지 이제야 알게 됐다. 하지만 더 이상 소용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장터 구경할 생각에 들떠 멍충이처럼 웃으면서 아버지를 따라 왔던 자신이 미웠다.

“내가 두 살 많으니께 그냥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야. 서방님은 나도 좀 그랴.”

“….”

우리 집 누렁이 같이 생긴 남자가 조심스레 말했다.

 

: 언니가 정신대로 끌려가고 나서 이순이는 원하지 않는 시집을 가게 된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를 마구잡이로 끌어가던 일본군을 피하기 위해서다. 남편은 이순이보다 두 살은 많은데, 서방님이라 부르기보다는 오빠가 편해서 오빠라고 부른다. 전쟁 막바지에 일본은 조선의 젊인이들을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전쟁터로 내보낸다. 

부모에게 속아 억지로 온 시집이지만 누렁이를 닮아 순하고 정 많은 오빠(남편) 덕분에 오빠에 대한 마음이 커진다. 

 

[본문]

 

맴맴맴맴 매앰매앰매앰.

아침부터 매미가 울어 댔다. 여느 때보다 더 시끄럽고 긴 울음 소리였다.

“순사들이 남자들을 끌고 간다고 동네마다 난리랑께. 안 되겄다. 뒷산 거 뭐여. 산신각 있지야. 거 가서 숨어 있어야.”

아침 일찍 이웃 동네에 일하러 갔던 시어머니가 헐레벌떡 돌아오며 말했다. 얼마나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거렸다.

“지도 들었는디 여까지 올라면 아직 멀었구만요. 낼 갈께요. 곧 있으면 어둑해질라는디.”

“안 돼야, 엊저녁 꿈자리가 뒤숭숭했당께. 니 아부지 끌려가던 날도 그렸어. 언넝 올라 가그라. 집 걱정일랑은 말고, 어여어여.”

시어머니 성화에 오빠는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설 채비 를 했다.

“며칠은 있어야 혀. 나댕기지 말고 산신각 안에 콕 박혀 있어야 한다잉.”

시어머니의 당부가 끝나기 무섭게 이순이는 저녁으로 먹을 강냉이를 면 보자기에 둘둘 말아 오빠 손에 쥐어 주었다.

“순사가 돌아가고 나믄 문 열어 주러 올라갈 팅께요.” ‘오빠에게도 숨을 항아리가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했다. 오빠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이순이 손을 한번 토닥여 주는가 싶더니 그새 어두워진 산으로 잽싸게 뛰어 올라갔다.

순사들이 들이닥친 건 오빠가 산으로 올라간 다음 날, 날이 새기도 전이었다. 잠귀 밝은 어머니가 벌떡 일어났다. 잠결에 이순이 옆으로 성재 도련님을 미뤄 놓는게 느껴졌다. 기침 소리하나 없이 벌컥 방문을 열고 들이닥친 순사들은 이불을 걷어 내고 잠에서 막 깬 이순이와 성재 도련님을 바라봤다.

 

 

: 어색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결혼 생활을 하던 이순에게 어려움이 닥친다. 바로 이순의 남편이 징병을 가게 된 것이다. 징용으로 끌려간 오빠(남편)가 사망 통지서 한 장으로 돌아왔을 때, 시어머니와 계속 송목골에서 살겠다는 용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아마도 남편이 없는 집에서 남편 가족을 지키겠다고 선택한 것은 오빠(남편)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투박한 나무 비녀를 만들어 주고 시장에 갔다가도 이순이를 향해 잽싸게 달려오곤 했던 오빠의 행동이 이순이에게 믿음으로, 더 나아가 사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본문]

 

시어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마당으로 나와 엄마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순이는 당산나무까지 배웅을 나왔다.

“또 올팅께. 그때꺼정 잘 지내고.”

이순이는 멀어지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자꾸만 뒤돌아보았다. 이순이는 그때마다 손을 흔들어줬다.

멀리서 희미하게 때 이른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지가 송목골 전설 이야기 해 드릴 테니 들어 볼랑가요? 옛날에 한 여인이 살았다요. 서방님이 큰 세상을 보러 떠나는 걸 나무 밑에서 배웅을 했는디 그 나무가 이 당산나무라 안하요. 근디 나무 밑에서 배웅을 하면 꼭 돌아온다는 전설이 있대요….”

성재 도련님이 등에 업힌 지 얼마 안돼 금세 잠들었는데도 이순이는 오빠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를 끝도 없이 들려주었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마을 입구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내가 얼마나 잽싼지 알지야?’

멀리서 옥비녀를 든 오빠가 금방이라도 뛰어올 것만 같았다.

 

: 어린 나이에 훌쩍 성장해 버린 이순이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이순이가 불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빠가 당산나무 아래에 서 있는 이순이에게 다시 달려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에는 이렇게 항상 슬픔 속에서도 희망이 공존해 왔다. 이것이 우리가 가슴 아픈 역사 동화를 읽고 이순이처럼 쑥쑥 성장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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