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당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21일(현지시간) 일본 정상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2022년 2월 러시아가 침공을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전투가 계속되는 국가·지역을 일본 총리가 방문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 사례다.
기시다 총리는 주요 7개국(G7)의 의장으로서 우크라이나에의 '흔들리지 않는 연대'를 강조하면서 비살상 장비 3000만달러를 포함해 5억달러 규모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약속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온라인으로 참가 의향을 표명했다.
NHK,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현지시간으로 21일 정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 도착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에 앞서 많은 민간인이 살해된 키이우 인근 부차를 방문했다. 기시다 총리는 교회에서 학살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헌화하면서 "강한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또 키이우에서는 전사자 추모의 벽을 직접 찾아 헌화했다.
기시다 총리와 젤렌스키 대통령은 비공개 정상회담을 가진 후에 공동기자회견에 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는 진정으로 강력한 국제 질서의 옹호자다"라고 평가하고 "일본의 국제 질서를 지키기 위한 리더쉽에 감사하고 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기시다 총리는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와 변함 없는 지원을 전했다. 러시아의 침공과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변경을 거부하고 법치주의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지켜내겠다는 결의를 확인했다.
기시다 총리는 회견에서 G7 히로시마 정상회의 개최 전에 "(젤렌스키 대통령과) 직접 이야기를 하고, 일본의 확고한 연대를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국제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폭거"라며 "이번 우크라이나 방문에서 이를 다시 한번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우크라이나 지원과 대(對)러시아 제재의 지속을 표명하고 핵 사용에 반대한다고 확인했다. 그는 "유일한 전쟁 피폭국인 우리나라(일본)로서는 러시아의 핵무기 위협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살상 능력이 없는 장비품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기금을 통해 3000만 달러를 제공하고, 이와 별개로 에너지 분야에서 4억7000만달러를 무상 공여한다.
아울러 두 정상은 일본과 우크라이나의 관계를 특별한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NHK는 양국 간의 관계 강화를 위해 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위한 조정을 시작한다고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의 방문에 대해 "일본이 G7 의장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하면서 성사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의 그동안 지원에 거듭 사의를 표하며 "우크라이나 및 룰에 따른 국제질서 투자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담을 마친 뒤 21일 밤 SNS에 메시지를 올려 "국제질서의 강력한 수호자이자 우크라이나의 오랜 친구인 기시다 총리를 키이우에서 맞이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우크라이나 방문을 환영했다.
또 약 2분 분량의 동영상을 공개하고 스스로 기시다 총리를 영접해 악수하는 모습과 사진 촬영에 응하는 모습을 소개하고, 우크라이나 측과 일본 측의 회담 장면도 담아 양국의 우호관계를 어필했다고 NHK가 보도했다.
이날 회견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를 "후미오"라고 부르는 장면도 있었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앞서 기시다 총리는 우크라이나를 방문하기 위해 일본 시간으로 21일 인도 뉴델리에서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폴란드로 민간 전세기를 타고 출발했다.
공항이 있는 폴란드 제슈프 공항에서 차를 타고 폴란드 남동부 프세미시우역으로 간 뒤 열차를 타고 우크라이나로 들어갔다. 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월 방문했을 때와 같은 경로였다.
요미우리신문은 "5월에 히로시마시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 전에 키이우를 방문해, 법의 지배에 근거하는 국제 질서를 지켜내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주도하는 자세를 세계에 발신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키이우에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총리 방문 전 러시아 측에 통보했다"고 전했다.
NHK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현지시간으로 21일 밤 키이우 중심부의 기차역을 열차로 출발했다. 기시다 총리는 22일에는 폴란드 안제이 두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한 후 일본에는 23일 아침 귀국한다. 당초 우크라이나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21일 정부 전용기로 일본으로 귀국할 예정이었다.
인도에서 우크라이나로 향한 기시다 총리와 동행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관방 부장관과 국가안보국장, 외무심의관, 통역, 경호원(SP) 등 10명 남짓이었고, 키이우 방문은 극소수의 정부 고위 관계자가 조율을 진행했다고 요미우리가 전했다.